부제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장편소설, 남명성 옮김 소설은 첫 대목부터 눈길을 끈다. "범인은 포틀랜드 주립 대학에서 미국 문학과 교수로 실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곧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인 네빌 맨친의 이름을 빌렸다. 완벽하게 위조한 대학 서류 양식에 쓴 편지에서 '맨친 교수'는 자신이 F. 스콧 피츠제럴드를 연구하는 젊은학자라고 주장하면서, 이번에 동부 지역에 다녀가는 동안 어떻게든 그 위대한 작가의 '친필 원고 및 관련 서류'를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편지는 프린스턴 대학 파이어스톤 도서관의 원고 소장부 책임자 제프리 브라운 박사 앞으로 보낸 것이었다."(8p) 초반부는 전직 CIA 요원이었던 데니와 그 일당(총 5명)의 피츠제럴드 다섯 작품의 초고 도난 과정..

이 책의 원 제목은 이다. 우리말로 하면 '불가피한' 정도로 해석된다. 때가 되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을 존엄한 방법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이러한 주제로 탐사취재를 하게 된 것은 라는 책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과의 줄다리기가 예견되어 있다. 책의 첫 도입부에서부터 멕시코로부터 불법으로 약을 반입한 70대 할머니 베티의 사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미국의 사례가 주로 인용되는데, 특히 오리건주 존엄사법을 예시로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말기질환을 앓고 살날이 6개월보다 짧다고 예상되어야 존엄사를 요구할 자격이 생긴다는데, 만약 만성질환을 앓아 고통받지만 시..

기린의 심장 - 이상욱 제겐 낯선 작가, 이상욱의 소설집 입니다. 교유서가에서 가제본으로 받아 읽어 봅니다. 표제작인 포함하여 9편의 중단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펼쳐 보는데, 첫 작품 부터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입니다. 식인외계인들과 정치적으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은 지구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낙오된 부류의 인간 중 희생자를 선정하여 식재료로 바칩니다. 그 식재료인 인간을 조달하는 일을 처음 맡은 (이혼남) 대수는 등록금을 필요로 하는 외동딸을 위해 한 고등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용천을 추천(?)받게 됩니다. 처음 맡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가운데, 딸과 동갑내기인 용천의 시를 읽어보면서 결국 (먼저 불치병으로 죽은 아내를 따라) 심경의 변화를 ..

여전히 그 정체가 궁금한 작가 듀나. 이번엔 2010년 동명의 단편소설을 10여년만에 장편소설로 선보인다. 이야기 구조는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미래 태양계와 성간우주를 연결하는 통로로 설정된 '궤도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거대 다국적기업과 해방전선간의 대결이 주요 스토리다. 그렇지만 단순한 SF 스페이스 오디세이류에 머무르지 않는다. '웜'(전뇌電腦)을 뇌에 이식 받고, 그 의식(기억)이 공유(또는 조정)된다는 설정이 오시이 마모루의 와 인형사(人形使)를 떠올리게 한다. 정신과 육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나인가 둘인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기계의 통제를 받는 대로 그 안에서 그것이 현실인양 살고 있는 - 물론 기계의 에너지원이 되는 소모성 자원임은 꿈..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 크레타 이라클리온 출생이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한다. 엄격한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와 그리스정교의 엄숙함은 그의 어린시절을 억누른 두 가지 중심축이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소설 『미할레스 대장』에서 잘 그려진다. 아테네대 법대를 마치고 자유로운 사상과 문학적 체험을 위해 당시 유럽 예술의 중심 파리로 떠나고, 1907년 그곳에서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주장하게 된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

루이스 세풀베다 장편 소설, 정창 옮김, 열린책들 작년 여름과 가을 사이 파라과이를 두 해째 연속으로 출장갔었습니다. 공정무역 유기농 물품 관련 생산지 방문으로 다녀오게 된 것 입니다. 한반도에서 볼때는 지구 정반대편 - 대척점이라고 하죠 - 에 있는 멀고 먼 지역 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3월부터 모든 해외 출장이 취소되어 버리고 파라과이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스페인에게 멸망당한 안데스 잉카제국의 후예 국가중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 최대국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라과이를 떠올리면 예전에 보았던 롤랑 조페 감독의 이라는 영화와 예수교신부, 그리고 과라니 원주민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초기 대표작중 하나인 (1989년)의 주무대가 ..

얼마전 커트 보니것의 를 읽었습니다. 다소 엉뚱하기 까지 한 독특한 문체와 디스토피아인지 유토피아인지 모를 모호한 미래상에 대해 작가는 또 열린 결말로 독자들을 살짝 난처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대표작인 을 다시 읽어봅니다. 문학동네에서 영미문학 대표번역가인 정영목님이 새로 번역한 판본과 함께 (절판된) 처음번역본까지 두 권을 샀습니다. 처음 번역본부터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 번역본과 함께 대중판(문고판크기) 원서도 참조하여 보려합니다. 두 번역본을 비교하여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 분의 독특한 문체를 제대로 맛보려면 결국 원문을 들여다 볼 밖에 없을 듯 해서요. 이 작품은 포로수용소와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작가의 반전문학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

알라딘 eBook (김초엽 지음, 104p) SF소설이 평소에 즐겨 읽던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보면서 자란 세대라 SF 영화에 대한 일정 정도의 선호도는 있었지만요. 아무래도 문학이라면 이른바 순수문학이 왠지 더 있어보여서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SF는 소수 매니아 층이 읽는 것으로 니치장르라 치부했던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얼마전 SF에 대한 제 이런 편견이 깨진 작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톰 고드윈의 (1954년)이란 고전 단편 SF 소설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스타더스트라는 구조선에 탄 밀항자 소녀에 대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과연 무엇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을까, 그리고 과학은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물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습니..

한 지혜 오랜만에 따뜻한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화자의 추억을 따라 예전 어릴적 내가 살던 집 골목길로 돌아가 봅니다. 이젠 어디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아직도 동무들과 해질무렵까지 다방구, 땅따먹기, 술래잡기 등을 하던 그 공터와 골목의 잔상은 아련히 남아 있습니다. 뽑기 아저씨가 텃밭인지, 공터인지 좌판을 깔고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병아리가 어미닭으로 부터 모이를 나눠먹듯 자기 순번을 기다립니다. 얼마전 친구로부터 달고나 얘기를 듣고 온라인쇼핑으로 그 추억을 맛봅니다. 나무 그늘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가게는 더께가 앉은 물건들이며 발처럼 드리운 까만 고무줄 묶음이며 더도 덜할 것도 없이 구멍가게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가게이다. 그리고 그 사이, 나무와 작은 가게 사이..

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지음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책모임에서 발제자가 정한 책이었는데, 간만에 접한 독특한 소재이면서 평소 가끔씩 타는 자전거라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레싱 박사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역자학자 입니다. 게다가 저명한 자전거 전문가 입니다. 이런 저자의 책답게 유럽 위주의 자전거 발달사를 엔지니어이자 역사가로서 흥미롭게 써나갑니다. 게다가 부제와 같이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치마에서 바지로의 의복 변천사와 여성해방을 연결지은 관점도 신선합니다. 하이휠에서 페달식 세 바퀴를 거쳐 로우휠에 이르기까지, 벨로시페드의 세분화와 발전은 모두 이들의 공이었다. (103P) -알라딘 eBook (한스-에르하르트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