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과 연말연시, 남들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괜찮은 원서 책 하나라도 읽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부담 없는 걸로 하나 고른 책이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의《Small Things Like These》(Faber & Faber, 2021)이었어요. 책 제목처럼 110쪽(전자책 70쪽) 분량의 비교적 작은 책이었는데 새해맞이 독서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As good as it gets)’였어요. 내가 빌 펄롱 Bill Furlong 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덕분에 가족과 가장, 종교, 사랑,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등 삶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재뿐만 아니라 아래 부커상(Booker Prize) 심사평처럼 형식미와 간결한 문체 역..
삶의 다른 말은 '스토리(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란 결국 그의 이야기겠고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책 표지사진, 알라딘인터넷서점) '나는 지나온 삶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은 또 어떻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정혜윤PD의 에서 작가가 천착하는 것은 삶이란 게 결코 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이 결국 이야기(서사)의 구조 속에서 같이 직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쓰던 책 은 창조의 에너지와 관계의 에너지가 균형 있게 만나 기쁘게 이 세계의 일부분의 되는 존재 방식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란 결국 관계를 통해 존재를 찾는 과정일 수도 있구나. 작가의 직..
김초엽 지음, 허블 SF소설이 평소에 즐겨 읽던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을 보면서 자란 세대라 SF 영화에 대해 일정 정도 선호도는 있었지만요. 아무래도 문학이라면 이른바 순수문학이 왠지 더 있어보여서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SF장르는 소수 마니아층이 읽는 니치장르라 치부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얼마 전 SF에 대한 이런 편견이 깨진 작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톰 고드윈의 (1954년)이란 고전 단편 SF 소설을 우연히 읽게 된 것이죠. 스타더스트라는 구조선에 탄 밀항자 소녀에 대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과연 무엇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을까, 그리고 과학은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물이어야만 하는가 하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드니 빌뇌..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이 소설을 듣자마자 생각나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김완 , 3년 전 쯤 읽었던 에세이였는데, 이런 직업도 있구나 싶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2017년, 삶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던 시절이었습니다. 암흑과 같았던 그때 유일한 안식처가 된 것이 책읽기 였고, 거의 매일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읽었던 책 중에 당연히 ‘죽음’이란 소재를 다룬 책들도 몇 권 있었죠. 셀리 케이건 , 김완 , 케이티 엥겔하트 등등. 삶과 죽음은 샴 쌍둥이 같습니다. 태어나면서 떼어낼 수 없는 그런 관계죠.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는 늘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
이 책은 한국 (농업)경제학, 통계학의 기초를 세운 고 김준보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조선 개항이후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경제사적 관점으로 정리한 책인데, 저자 김석원교수(경영학)는 그의 손자이다. 할아버지의 사료를 바탕으로 손자가 책을 펴낸 이유는 에필로그에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논리는 원래 일본 학자들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 방법'을 썼다는 미명하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어려웠다.” 282p 에필로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식민주의 사관이 버젓이 역사학회와 그것을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정당화의 포장을 입고 결과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
라는 기상천외한 단편을 접하고, 김학찬이란 작가를 수소문하다 또 다른 재밌는 장편을 만나게 되었다. 6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란 작품이다. 추운 겨울 특히 생각나는 간식거리로 ‘미니잉어빵’을 점심산책길에 덕성여중고 골목의 단골가게에서 즐겨먹는 내겐 이 소설은 천생연분 같은 인연이다. 소설은 붕어빵의 명인(달인?) 아버지를 둔 이십대 후반 청년의 고군분투 타꼬야끼 명장되기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는데, 다음과 같이 그 문을 연다. 요즘 세상에 가업을 물려받는 일은 흔치 않다. 아버지가 무슨 회장님쯤 된다면 모를까. 가업이란 아무나 이을 수 없는 귀하디귀한 것이다. 어디 가서 “가업을 물려받을 계획이야”라고 말하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라딘 eBook (김학찬 지음) 중에서 가업을 잇게..
칼리 월리스 지음/ 배지혜 옮김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문득 떠오르는 영화들이 몇 편 있었다. 폴 W.S. 앤더슨 감독의 (1997)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2)와 (2017)이다. 버려진 우주선 탐사, 외계 생명체, 우주 식민지 개척과 같은 소재로 흥미롭게 만들어진 SF호러 영화들로 내 최애 영화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이 '구원의 날', 이 작품속에 3 in 1 믹스커피마냥 모두 들어 있는게 아닌가?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 남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스와 자흐라의 시점에서 각 장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홀수장은 자흐라가 짝수장은 자스가. 이 두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부모 두 분 모두 과학자이고, '하우스 오브 위즈덤'호에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자흐라의 의사 ..
임우진 지음/ 을유문화사(2022.11.1) 코로나 19도 벌써 3년차. 12월도 이제 이주가 채 남지 않았다. 11월말 2가 백신 접종( 5차 접종)하고 올해도 무사히 지나가나 했는데, 아뿔싸.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덕분에 7일간 자가격리 하니, 자연히 재택근무모드로 돌입하였다. 마침 주말들어 다시 추워지면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책읽기. 지난 주 점심산책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을때 우연히 눈여겨 본 책이 있다. 임우진 건축가의 이다.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 거주 20년 경험을 바탕으로 길, 건물, 공간,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을 문화 비교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 본다. 혹시나 하고 월간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를 찾아봤는데, 오~ 마침 있다! 이..
부제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장편소설, 남명성 옮김 소설은 첫 대목부터 눈길을 끈다. "범인은 포틀랜드 주립 대학에서 미국 문학과 교수로 실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곧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인 네빌 맨친의 이름을 빌렸다. 완벽하게 위조한 대학 서류 양식에 쓴 편지에서 '맨친 교수'는 자신이 F. 스콧 피츠제럴드를 연구하는 젊은학자라고 주장하면서, 이번에 동부 지역에 다녀가는 동안 어떻게든 그 위대한 작가의 '친필 원고 및 관련 서류'를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편지는 프린스턴 대학 파이어스톤 도서관의 원고 소장부 책임자 제프리 브라운 박사 앞으로 보낸 것이었다."(8p) 초반부는 전직 CIA 요원이었던 데니와 그 일당(총 5명)의 피츠제럴드 다섯 작품의 초고 도난 과정..
이 책의 원 제목은 이다. 우리말로 하면 '불가피한' 정도로 해석된다. 때가 되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을 존엄한 방법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이러한 주제로 탐사취재를 하게 된 것은 라는 책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과의 줄다리기가 예견되어 있다. 책의 첫 도입부에서부터 멕시코로부터 불법으로 약을 반입한 70대 할머니 베티의 사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미국의 사례가 주로 인용되는데, 특히 오리건주 존엄사법을 예시로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말기질환을 앓고 살날이 6개월보다 짧다고 예상되어야 존엄사를 요구할 자격이 생긴다는데, 만약 만성질환을 앓아 고통받지만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