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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발명

libros 2024. 1. 30. 15:19

삶의 다른 말은 '스토리(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란 결국 그의 이야기겠고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책 표지사진, 알라딘인터넷서점)

 

'나는 지나온 삶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은 또 어떻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정혜윤PD<삶의 발명>에서 작가가 천착하는 것은 삶이란 게 결코 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이 결국 이야기(서사)의 구조 속에서 같이 직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쓰던 책 <삶의 발명>은 창조의 에너지와 관계의 에너지가 균형 있게 만나 기쁘게 이 세계의 일부분의 되는 존재 방식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란 결국 관계를 통해 존재를 찾는 과정일 수도 있구나.

작가의 직업이 방송국(라디오)PD 이기도 하기에 취재 과정에서나 평소 주위에서나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겠죠. 작가가 직업적 소명의식이 남달리 투철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사회 현상과 문제에 대해 관심의 층위를 표면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고 좀 더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스스로를 가까이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엔 다소간의 고통이 수반될 수 있어요.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이더란 말이 있듯이요. 어떤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것을 알기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발명>은 기후 위기와 동물 대멸종의 시대에 기쁘게 인간이 될 방법을 찾고 지구에서의 삶을 깊고 풍요롭게 누리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에게 삶은 좋은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다."

 

'태평양전쟁 전범 유족회'를 통해 포로감시원으로 전범재판소에 회부되어 사형을 당하고 살아도 고통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조선 청년들과 그 가족의 문제를 다룬 첫 번째 글 '앎의 발명' 역시 내게는 생소한 이야기였지만, 글을 읽으며 <조문상의 유서-싱가포르 전범재판> 일화 속 조문상이 되어 봅니다.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콰이강의 다리 미얀마 건설 현장에서 일본군 육군 군속으로 통역 업무를 담당하다 1947225, 스물여섯 살에 포로 린치 혐의로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서 사형된 일본 이름 히라하라 모리츠네. 그 시절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태평양전쟁 전범재판에서 주요 전범들은 풀려나고 식민지배 받던 조선의 군속들은 전범으로 처형되고 정신병원에 갇히고도 부끄러운 삶을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했던 운명이라니. 책을 읽는 동안 조문상이란 인물에게서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것일까?

 

"역시 정말로 죽고 싶지 않다. 이런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말은 본심이 아니었다. 역시 이 세상이 그립다.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면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싶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다. 26년이 거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조문상 유서의 한 부분을 인용한 이 대목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속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떠올랐어요. 똑같이 전범이 되어 사형 당했던 공통점이 있지만, 결국 아이히만은 생각 없는 껍데기로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조문상과는 달랐습니다. 아렌트가 이야기 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의미상 진부함 또는 상투성이 더 적절할 듯함)'으로 대부분의 조선인 종범들의 운명도 그렇게 되었으리라. 조문상처럼 껍데기를 벗고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으로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개의 일화들인 대형 참사와 그 유족들의 이야기 '사랑의 발명', 천연기념물 흑두루미 이야기 '목소리의 발명', <나의 문어 선생님> 이야기 '관계의 발명', 그리스 신화와 산업재해 이야기 '경이로움의 발명', 그리고 육두구와 <지도 끝의 모험> 이야기 ' 이야기의 발명'도 모두 흥미로운 소재이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쉽게 나오기 힘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작가가 말한 '앎의 지도'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정혜윤 작가를 몇 년 전 <삶을 바꾸는 책 읽기>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땐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요. 그저 글 쓰는 독특한 개성의 라디오PD의 가벼운 에세이인가 보다 하고 한동안 잊었죠.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삶의 발명>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솔직히 여러 내용이 왔다 갔다 하는 글의 구성이 아직 조금은 적응하기 쉽지는 않지만, 그의 메시지만큼은 명확하고 또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지향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앞으로도 그의 다른 책을 기대해 봅니다.

 

"거북이 알은 생명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존재다. 달이 그런 것처럼, 파도가 그런 것처럼,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지구는 더 이상 황금 보물을 찾아 정복할 곳이 아니라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를 되찾는 곳이다. 나는 거북이 알과 맛있는 귤에 걸맞은 이야기를 따라가 볼 생각이다. "이 이야기가 딱이야!" 그런 이야기를 찾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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