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책은 한국 (농업)경제학, 통계학의 기초를 세운 고 김준보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조선 개항이후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경제사적 관점으로 정리한 책인데, 저자 김석원교수(경영학)는 그의 손자이다. 할아버지의 사료를 바탕으로 손자가 책을 펴낸 이유는 에필로그에 잘 드러나 있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논리는 원래 일본 학자들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 방법'을 썼다는 미명하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어려웠다.” 282p 에필로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식민주의 사관이 버젓이 역사학회와 그것을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정당화의 포장을 입고 결과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경제사적인 측면에서 1백여년전의 개항과 식민지화 및 자유시장경제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저자는 조곤조곤 할아버지의 사료를 갖고 반박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크게 개화기, 침략기, 강점기 세 부분이다. 여기에 쌀, 금, 돈이라는 화폐가치를 갖고 있는 재화의 관점에서 이 시기 어떻게 일본에 의해 조선(한국)의 경제가 서서히 무너지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종속적 수탈적 대상으로 전락하는 지를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한다. 

 

"개항기의 조선 역시 같은 전략으로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당하기 전까지 가능한 한 문을 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한국인들은 개항을 빨리해 자유무역을 했다면 조선이 강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상들의 무식함과 고집스러움을 탓하곤 한다." 15p

 

19세기 중반 서구열강에 의해 중국이 사분오열 되고,  1853년 일본도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된후, 한반도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제국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였으나, 이도 잠시 뿐, 메이지유신(1868년)으로 본격적인 산업화와 제국주의 학습을 한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면서 결국 한반도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린다. 이를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 발행과 쇄국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 이면에 벌어진 일본에 의한 화폐의 혼란, 조선의 주요 산물인 쌀과 금의 헐값 매점의 문제점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 쌀이나 금을 헐값에 사서 일본에 거의 7배 넘는 가격으로 넘길 수 있다면 누가 이런 장사의 대열을 마다하겠는가? 결국 일본 군경의 비호하에 일본 상인들의 놀음터가 되어버리고 마는 한반도.

 

"그런데 최소 26톤의 금을 조선에서 더 들여왔으니, 일본은 신용 높은 금화를 더 많이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무기든 기계든 원료는 얼마든지 사올 수 있었고, 이는 일본 경제가 기존금 보유량 대비 최소 69% 이상 조선의 금을 바탕으로 추가 성장했음을 의미했다26-37.5×100-69.3. 개항기 조선 금만으로 경제 규모가 69% 커진 것이다. 1876년 개항에서부터 자료 마지막의 1904년까지, 일본은 조선의 금으로 30년간 알짜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98p

 

일본 상인에 의한 백동화 위조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발행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했다. 여기에 일본의 제일은행(다이이치은행)은 조선의 국책은행 행세를 하며, 당백전과 백동화 발행액(1,300만 원)의 4배가 넘는 5,700만 원의 (일본 엔화와 연동되는) 제일은행권을 뿌려대면서 이후 조선의 화폐를 무효화 하고, 결국 일개 은행 하나가 사실상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되고 만다. 이러한 경제적 예속은 사실상 한일합방의 서막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선에서 성공을 거듭하던 일본인들은 몇 년이 지난 1910년에 한일합병을 성사시키고, 조선에서 열심히 뜯어온 돈으로 '낭만'을 즐기는 시대를 맞았다. 1912년 무렵의 다이쇼 로망이 그것이다." 190p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서구열강의 식민지 플랜테이션 경영을 그대로 답습한 일본의 조선 농장화(소작농화)는 결국 3.1 운동이라는 대대적인 저항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그러나 이후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조선인을 희생해 일본 대농장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꾀했고 결국 그들이 말하는 자유시장경제란 이러한 농촌의 식량기지화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공고화하는 허울뿐인 경제정책이었다. 다이쇼 로망이라는 황금기를 구가하던 일본 역시 대공황을 피해가지는 못했고, 결국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조선을 수탈해 가는 군수기지화를 획책했고 결국 일본의 패망은 조선의 껍데기 뿐인 독립을 가져올 뿐이였다. 

 

"일본이 자국의 주머니까지 다 털어가며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에 무언가 남겨둘 여유도 이유도 전혀 없었으니, 전쟁 후 조선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이 패망 때까지 지폐를 마구 찍어 조선에 뿌리는 바람에, 해방 후 조선은1944년 물가지수 241 에서 3년 만에 4만 926이라는 170배가 오른 인플레이션을 떠안게 되었다."  279p

 

이 책은 쉽게 읽혀진다. 적절한 지표와 간결한 해설인듯 하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무거웠다. 백여년전 개항부터 식민지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해 근현대사를 통째로 도둑맞은 듯 하게 아무것도 배운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다 먼 옛날 얘기만 들었던 역사시간. 반면 구한말에서 한일합방까지의 격동의 시대와 이후 식민지화의 지난한 민족의 역사는 통편집이 된것이 아닐까? 불편한 진실을 근대화란 미명의 식민사관으로 덮는 것에 우리는 단지 입시문제에 나오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제라도 역사바로알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지금의 무관심이 미래를 볼모로 삼아선 안되기 때문이다. 

 

마침 내일 책모임이 있다. 8년전 역사책읽기로 시작한 모임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살려보면 좋을듯 싶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