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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격

libros 2022. 9. 6. 09:01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Inevitable> 이다. 우리말로 하면 '불가피한' 정도로 해석된다.

때가 되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을 존엄한 방법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이러한 주제로 탐사취재를 하게 된 것은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과의 줄다리기가 예견되어 있다. 

책의 첫 도입부에서부터 멕시코로부터 불법으로 약을 반입한 70대 할머니 베티의 사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미국의 사례가 주로 인용되는데, 특히 오리건주 존엄사법을 예시로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말기질환을 앓고 살날이 6개월보다 짧다고 예상되어야 존엄사를 요구할 자격이 생긴다는데, 만약 만성질환을 앓아 고통받지만 시한부 삶을 측정하기 어려워 존엄사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의 권리는 누가 찾아줄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인터뷰했던 많은 사람은 '존엄성'이란 것을 정확히 '괄약근 조절'과 동일시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결과물에 대한 감내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주요 사례의 인물 6명이 아래와 같은 챕터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조이다.  

1장 현대 의료: 브래드쇼(암, 미국 캘리포니아주)

2장 나이: 애브릴 헨리(82세, 노환, 영국)

3장 신체: 마이아 칼로웨이(39세, 다발성경화증, 보험미가입, 미국)

4장 기억: 데브라 쿠스드(65세, 치매, 미국 오리건주)

5장 정신: 애덤 마이어클레이튼(27세, 범불안장애, 캐나다)

6장 자유: 필립 니츠케(엑시트인터내셔널 설립자 회장, 전직 의사)의 DIY 죽음 워크숍, 잭 케보키언의 타나트론 사례

그의 <평온한 약 안내서>란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고 "이성적 성인이 자신이 선택한 시기에 평온한 죽음을 맞을 권리는 기본권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엑시트인터내셔널 회장 필립의 당당함은 기존 관습법과 종교계, 그리고 정치권이 모두 침묵한 가운데, 연명치료의 고통을 호소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는 데 있는 건 아닐까? 

죽을 권리에 대한 반대론자는 흔히 존엄사법이 '미끄러운 경사길 문제'(가난한자 병든자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를 들지만 사실상 직접적으로 그런 사례나 통계가 드러나고 있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또한 인구고령화에 대한 존엄사법의 악용 소지(재정 공리주의적 측면) 또한 섣부른 가정일 수 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앞에서 존엄사 사례로 든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소환한다. 

"모두 무언가로부터 도망쳤다. 애브릴은 나이로부터, 데브라는 병으로부터, 애덤은 정신으로부터, 그런데 그들은 어디를 향해 도망친 걸까? "(p457)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그들은 일관성, 평정심, 정연한 서사에서 존엄성을 발견한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으로, 자기가 정의한 자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했다.(중략) 이렇게 선택한 죽음은 작가가 쓴 이야기 같은 것이 되었고, 어느 한 개인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써내려갈 수 있게 해주었다." (p458)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가 공론의 장에서 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되는 사회분위기 마련부터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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