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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이근후지음

나이를 잊고 지내다 얼마전 반백살에 접어드니 이제 좀 더 나이가 실감나고 그렇게 나이를 의식하게 되니 갑자기 확 늙어버린 느낌이랄까.

이젠 유투버로 거듭나고 있는 동갑내기 god 박준형이 스스로를 '반백살'이라 희화하고 하는 말이 남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민식PD - 이젠 작가라 해야 할까? - 의 블로그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저자 이근후박사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 멋있고 해서 한걸음에 알라딘 책방에서 구매하였죠. 그리고 사갖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이자 동네책방 <갈다>의 주인인 이명현박사의 아버지가 바로 이근후박사더군요. 역시 부전자전!

80이 다 된 - 6년전 책이니 지금은 여든 다섯이시네요 - 어르신이 쓴 수필집이라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적어도 이른바 '꼰대' 처럼 살지는 않았겠구나 하면서...

그런데, 첫번째 글에서 부터 내 이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져버렸습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중략)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21쪽)

 

육신의 나이듦에 우울해 하거나 낙담하기 보다는 자신을 긍정하고 다독이면서 인생의 시간을 잘 쓰는 것이 현명한 것이겠지요. 

 

그는 삼대 열세명이 한지붕 아래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대가족입니다. '나이 든 부모를 돌보고 육아문제를 해결하자는 장남의 아이디어였다' 고 합니다. 아직은 장자 중심의 사회에다 네 자녀 내외가 모두 맞벌이니 나름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장남이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시작하더라도 부대끼며 같이 살다보면 여러가지 갈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근후 박사의 네 자녀와의 동거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각자 독립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저자는 벌써 삼십 여년전에 출간된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을 인용합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의 경쟁력이 중요한데, 1인 가족과 5인 가족의 정보력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가 더 경쟁력 있을 거라 이야기 합니다. 물론 정보력 외에 가족간 '소통'의 장점은 두 말할 것도 없고요. 그의 사례는 가족의 해체, 1인 가족의 증가, 소외와 단절 등 현재의 핵가족화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뱀꼬리를 단다면, 이런 상황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라면 지역내에서 '마을공동체' 문화를 통해 육아와 노후를 이웃들과 함께 해보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거절하는 며느리란 대목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일수록 신뢰의 토대에서 YES와 NO 표현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의 정신과 의사로서 통찰이 잘 엿보입니다. '거절의 철학' 이란...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다. 내 뜻은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한다. (43쪽)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그는 '너무 열심히 살아온 증거'라는 의사로서의 소견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일흔이 넘어서 시작한 공부 - 사이버대학 문화학과 - 가 제일 재미있다는 데에서는 요즘 시험을 위한 시험과 대학진학의 세태에 반면교사가 됩니다. 즐기면서 놀듯이 하는 '공부만을 위한 공부'와 '경쟁이나 칭찬을 위한 공부'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화두를 던집니다.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철들지 않는 소년이 살고 있다'면서.

 

나는 내가 스승이라는 이유로 목에 힘만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에는 장난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싶어 안달하는 소년이 살고 있다. '아,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라는 생각을 나이 들었다고 억누를 필요는 없다. 물론 평상시에도 소년의 치기로 살아간다면 문제겠지만 가끔 모두에게 행복함을 주는 느슨함은 꼭 필요하다. (82쪽) 

 

학문적 동지이자 인생의 동무로서 살아온 이근후 이동원 부부를 보면 '저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소소한 불만이야기, 부부 문패나 시국사건 수감, 이화여대 여성학 강좌 개설, 그리고 가족아카데미아를 같이 하는 것 까지 두 분의 삶의 궤적은 늘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부부 생활의 가장 중요한 팁이라면, 서로의 공통점은 나누고 나쁜 점은 모른 척 덮어 주는 것이다. 그 나쁜 점의 기준이 패가망신하는 일이 아니면 덮어 주어야 한다. 

결혼의 낭만을 꿈꾸는 사람은 낭만을 잃고, 오히려 낭만 따위는 잊어버리고 서로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인 부부가 된다고 한다. 어느새 호호 할머니 파파 할아버지가 된 우리 부부는 인생의 어느 시절보다 낭만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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