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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작가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2017년 초 무렵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2017)란 책을 통해서다.
대안학교 생활만 6년 하다, 이제 막 공교육 고교생활을 시작한 첫째아이에게 국영수 입시과목위주의 공부가 힘이 부칠때,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였다.
평소 내가 생각했던 외국어(영어) 공부의 방식과도 공통점이 많았고, 무엇보다 요즘같아선 외국어 배우기가 다소 늦은 시기인 대학시절 독학으로 영어역량을 높여 외대통번역대학원 진학까지도 한 그의 배경이 자신의 (영어)공부방식을 스스로 찾아야 아이에게는 하나의 자극이 될듯 했다.
저자의 이력이 참 독특하다.
그가 자인했듯 적성에 안맞는 이공계전공(광산학과)에다 첫직장(외국계회사의 치과재료영업사원)도 금세 그만두고 어학연수 없이 독학으로 외대통번역대학원을 들어가게 된다. 한때는 <뉴논스톱>, <내조의 여왕> 같은 드라마 연출로 나름 명성을 쌓았지만 - 난 이 때나 지금이나 TV를 거의 안보니 당시 그의 존재를 알리가 없었다. - 2012년 MBC 총파업에서 노조간부로 시위를 주도하다 징계를 받고 결국 본업이 아닌 주조정실에서 한동안 유배지(?) 생활을 한다. 전화위복이던가? 한직으로 발령받은 후, 그가 평소 즐겨하던 책읽기, 여행, 글쓰기에 더욱 힘을 쏟다보니 평소 쓴 글을 엮어 책을 출간하게 되고 그 것이 베스트셀러가 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다. 이제 방송사 드라마PD보다는 '작가'가 어느덧 더 자연스런 호칭이 된듯하다.
그런데 이 베스트셀러작가는 몇개월뒤 그 해 초여름 개인라이브방송을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MBC사옥에서 외치며 또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리고 결국 다시 고향인 드라마PD로 복귀한다. 본업인 방송국PD로서는 비록 순탄치 못한 삶이었지만, 영어책베스트셀러 이후 각종 강연요청이 쇄도하는 유명인이 된다. 그 1년뒤 써낸 <매일 아침 써봤니?>(2018)가 요 몇년 글쓰기 책 열풍 속에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젠 명실상부한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취미이자 이젠 본업처럼 된 '영어, 글쓰기, 여행 삼부작(Trilogy)' 중 마지막 편이 바로 이 책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2019) 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세 권의 책 중 이 책을 가장 편하게 썼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행'이란 게 논다, 쉰다는 속성이 있는 반면에 '영어'나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학습과 정신노동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니 그도 그럴듯 하다. 1년에 200권의 책을 읽는다면 1년에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니라 한다. 물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의 경험을 다독을 통한 글쓰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프롤로그 떠나보기 전에는 모른다
1장 변화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2장 낯선 것을 익숙한 영역으로! 경계를 조금씩 확장한다
3장 다름을 인정하면 모든 게 즐거워진다
4장 미룬다고 더 좋아질 일은 없다
에필로그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김민식PD는 대학 신입생때 다른 학교 축제에 놀러 갔다 "올 여름방학에 자전거 타고 전국 일주 할 사람, 모여!" 란 대자보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이때부터 깨달았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나의 책임이고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합니다. 인생에 뭐가 더 있겠어요."
(알라딘 ebook 14/490쪽)
"삶의 재료는 시간이고, 좋은 삶을 만드는 건 좋은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주고, 나를 성장시킵니다. 여행을 통해 꾸역꾸역 나의 경게를 넓혀갑니다."(이 책 19/490쪽)
저자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라고 이야기 한다. 목표를 향해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저자가 직접 경험해 본 국내외 여행의 코스를 경험자의 시각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 장의 끝에 여행을 만끽하는 꿀팁도 제공한다.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세 가지 방법', '장거리 비행 시 시차 극복하는 방법', '해외에서 뮤지컬 고르는 요령', '자전거 전국 일주 준비하기'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나는 2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과 현지 도착했을때 시차를 잘 극복하는 꿀팁이 와 닿았다. 직업상 해외 출장이 비교적 잦아 장거리 비행도 종종하는데,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두편 이상은 지겹고, 가져온 책을 읽기도 전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자는데 개인등을 나홀로 켜고 있기도 좀 그렇고, 중간 중간 자다 일어나서 기내석 먹는 것도 -게다가 보통은 현지 맥주를 한 두 캔 마신다- 리듬을 깨기 일수였다. 현지 도착해서도 낮에는 현지 일을 밤에는 한국 일을 하느라 잘 시간도 충분치 않다. 그 결과 보통 출장중에는 하루 평균 네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저자의 꿀팁은 다음과 같다.
1. 기내식은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2. 기내에서 알코올 섭취는 삼갑니다.
3.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 나라 기준으로 밤까지 버팁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서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캐나다인이 중국에서 영어 교사로 살다 아프리카에 온 것'을 보고 또 동기부여를 받는다. 그처럼 다양한 외국어를 하고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이 노후의 꿈이라 한다. 외국어(특히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고 그들의 문화를 좀 더 만끽할 수 있는 것이리라.
"책을 쓰고, 그 인세로 여행을 다녀오고, 그 여행에서 다시 새로운 책의 영감을 얻는 것 그게 제가 꿈꾸는 노후의 선순환입니다."(이 책 232/490쪽)
'그 어떤 괴로움도 즐거움으로 바꾸는 비결'이란 글에선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평생 교직에 있다 은퇴한 보수적인 경상도 노인인 아버지와 50이 다된 아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사춘기 시절, 가장 싫어했던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 저자의 나이라 한다. 부모의 욕심(의대진학)을 채워주지 못하고 언제나 아버지를 벗어나는 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했던 청춘이 어느새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된것이다.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대로 화해도 못하고 가버리시면 후회할 것 같아 1년에 한 번씩 같이 여행다니고 아버지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는 저자를 보면 5년전 갑자기 떠나버리신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중학교 이후로 아버지와 소원해진 관계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풀지 못했기에 더 아쉽고 죄책감이 든다. 쉰의 나이의 김민식PD가 팔순의 아버지와 티격태격 하면서도 같이 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서로에게서 보지 못했던 장점도 보게 되고 오해도 풀고 하는 과정을 나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황망히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래서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와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모시며 남기는 여행기는 20년 후의 저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추석에 아들과 아버지가 단둘이 떠나는 여행,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모두를 위한 윈-윈 전략이에요."
(이 책 253/490쪽)
이런 현명한 생각을 난 왜 하지 못했을까?
'아버지 모습에서 미래의 나를 만나는 순간'에선 "내 평생소원이 뉴욕에서 한 달만 살아보는 거다."란 아버지와 뉴욕을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저자의 짠돌이 습관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구나 하는 것도 아버지와의 여행에서 깨닫는다. 팁문화를 이해못하고 팁안주는 맥도날드, 잭 인 더 박스, 칼스 주니어, 인 앤 아웃 버거 등 계획에도 없던 패스트푸드 탐방을 하게 한 아버지, 2달러도 아깝다며 페리를 안 탄 아버지, 뉴욕에서 3주 동안 메트로폴리탄미술과, 자연사박물관, 프릭컬렉션이니 하나도 안보고 그냥 센트럴파크 산책과 하이라인 걷기, 타임스 스퀘어 앉아서 오가는 사람 하염없이 바라보기나 공짜 구경만 한 아버지와의 여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겠다. 그렇지만 여기서 저자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경계하겠다 다짐을 하니 이 번 여행에서도 남는게 있구나 싶다.
10년전쯤인가? 아버지가 뉴욕에 사는 누님에게 다녀오신 것이. 물론 당신께도 미국여행은 칠십평생 처음이셨으리라. 어릴적부터 당신의 친한 친구분들이 다 미국에 사시니 가서 보고 싶다 입말을 하실때 마다 보였던 아버지의 씁쓸하신 표정이 떠오른다. 드디어 소원을 풀어보게 된다. 대학 동문선후배들과의 미주 여행길에 부러 여정뒤에 누님의 뉴욕방문일정을 넣고 좋아하셨던 모습. 오랜 여정으로 다소 피곤하셨겠지만, 미국사는 자녀덕에 오랜만에 개인적인 일정에다 오랫동안 못만났던 친구분들도 보고 얼마나 좋으셨을까.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김민식PD처럼 내가 직접 아버지를 모시고 나도 아직 못간 뉴욕을 가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게 결국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큰딸 덕분에 호사를 한 번이라도 누리셨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년 여름 우리가족 네식구 미국 뉴욕 여행을 꿈꿔본다. 이번에는 무조건 해보는 거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하면 또 못간다.
3장에서 저자는 주로 이렇게 아버지와의 여행의 추억을 반추한다. 그리고 가족(부부간, 부녀간 조합이 흥미롭니다)과의 여행도 이야기 한다. 그래서 내겐 가장 마음에 와 닿으면서도 아프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숙한 이가 앞장서고 능숙한 이가 쫓아간다'란 글에서 아내와 저자 둘만의 오붓한 여행의 한 단상.
사려니숲길을 걷는 아내를 보며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내 혼자 씩씩하게 잘 걷네요. 항상 회사 이로가 집안이로 바쁘기만 한 마님이 주말에 이렇게 숲길을 걷는 모습, 보기 좋아요. 평소라면 수다를 떠는 저도, 오늘은 묵언수행 하듯 입을 닫고 멀찌감치 뒤에서 쫓아갑니다. 아내가 조용한 숲속의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이 책 319/490쪽)
" '앞에서 끌지도 않고, 뒤에서 붙잡지도 않는다. 그냥 서로가 가는 길을 존중하며 조용히 쫓아간다. 그가 무엇을 하든, 뒤는 내가 지켜준다는 생각으로.' 부부가 여행을 하는 법도, 인생을 사는 법도 이런 게 아닐까요?"(이 책 321~322/490쪽)
'돈보다 시간에 더 투자한다'란 글에선 저자와 큰딸과의 라오스 여행을 통해서 소소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여행의 즐거움을 이야기 한다.
"아이와 함께 배낭여행을 하면 아이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돈보다 시간을 더 투자하는 편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시간이니까요."(이 책 329/490쪽)
'부모의 욕심대로 살기보다 내 뜻대로 살길'에선 안나푸르나 트렉킹 길에서 만난 한국여학생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보니 나도 내 두딸들이 세상을 향해 두려움없이 자신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난 멍석만 깔아줄뿐 무대의 주인공은 그들이니.
'인생관은 20대에 만들어지고, 인생은 50대에 만들어진다'
저자가 힘들때 춘천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69세의 외국 할아버지 라이더를 만나 닭갈비를 같이 한다. 알고보니 자전거 여행 가이드북을 여러권 쓴 저자(토마 벨칙; Tomas Belcik)이다.
"프라하에서 소련군 탱크를 피해 기차타고 달아나던 밤, 할아버지는 가방 하나 들고 길을 나섰대요.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물건들로 인생을 채워갑니다. 그런데 소유는 다시 우리를 옭아매는 짐이 됩니다. 할아버지는 20대에 이미 깨달은 거지요. 인생을 사는 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요. 그렇게에 지금도 자전거에 텐트 하나 싣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겁니다."
(이 책 409/490쪽)
"인생은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집니다. 내 나이 50, 오늘 하루하루가 소중한 인생을 만들어가지요. 인생관은 20대에 만들어지고, 인생은 지금 이 순간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나이 50에 자전거 전국 일주에 도전했습니다."
(이 책 409~410/490쪽)
10일간 자전거 전국 일주를 마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좋은 날씨, 좋은 경치만 쏙 빼먹고 내뺄 순 없어요. 여행에서 고난이 닥치면 깨달음이 오고 배움이 생깁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달립니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오는 대로 받아들이려고요."(이 책 471/490쪽)
저자는 평생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합니다. 장나라 캐스팅 에피소드도 양념처럼 잠깐 나오죠.
'되는지 안 되는지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낯선 것을 익숙한 영역으로 편입해가며 나의 영역을 확장한다.'
'아무리 힘든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
'다름을 인정하면 즐거워진다.'
'산을 오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삶의 태도다. 이렇게 살고 싶기때문에.
"인생은 대충대충 삽니다. 대신 하루 하루는 열심히 알차게 살아요."(이 책 487/4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