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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맥주여행: 맥주에 취한 세계사> 백경학 지음
대학교 1학년 때인가... 벌써 30년이 다 되가는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밤 12시면 심야영업금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한 잔이 아쉬우면 가게 셔터문을 닫고 알음알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때.
늦가을 아님 초겨울 새벽, 친구 서너명이 호프집에서 연신 500ml 생맥주 잔을 기울인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좀만 더!"
초저녁에 시작한 학교앞 작은 호프집 술자리가 후끈 달아오른다.
호프집 주인 '형님'의 제안으로 우리 넷이 500ml 잔으로 100잔을 채우면 술값이 공짜라는 말에 솔깃하여 밤을 지새운다.
20살 청춘의 객기, 아니 취기(?)가 엊그제만 같다. 지금은 그저 그 시절의 젊음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때는 맥주를 맛으로 먹기 보다는 싼 맛에 양으로 즐기던 시절이었다.
OB(동양맥주)와 CROWN(조선맥주) 외엔 다른 맥주를 맛보기 어렵던 때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되고, 카투사(KATUSA; Korean Army Augmented to United States Army, 미육군에 배속된 한국육군)로 복무하다 보니
미국 맥주를 종종 마시게 되었다. 밀러(Miller)와 버드와이저(Budweiser)에 가끔은 먹통맥주라 불리우던 황소그림의 캔맥주 슐리츠(?)도 즐겼다. 1달러에 800원 하던 시절이니 10불을 주면 24병 한 짝을 살 수 있었고, 소주보다도 값싼 주류였으니 나 같은 군바리에게는 좋은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제대 하고 카페에 가니 이 미국 맥주가 한 병에 3~4천원인가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더 이상 이 저렴한(?) 미국맥주는 더 이상 내겐 좋은 친구가 되지는 못했었고.
그동안 만년 2등 하던 크라운이 HITE란 브랜드로 단숨에 OB의 아성을 무너뜨리게 되고, 잠시 나도 HITE와 친구가 된다. 물론 같은 크라운에서 나온 스타우트(STOUT)란 흑맥주가 내겐 입맛에 맞았고, 졸업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마시게 된다. 그러면서 WABAR라는 세계맥주 체인점이 생기고, 세계맥주집이 여기 저기 생기게 되어 다양한 수입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왠지 허전한 것은 좀 더 맛있는 맥주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이른바 '수제맥주(Craft Beer)' 였다.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만난 수제맥주집 The Booth, Magpie, Craftworks 등에서 맛본 맥주는 가히 신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게 벌써 6~7년 전 이고, 이제는 다양한 수제맥주 양조장과 펍이 생겨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참, 편맥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른바 편의점 맥주다. 500ml 4캔에 만원이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가성비로 주머니가 가벼운 애주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내가 편맥으로 주로 선택하는 것은 체코맥주 Pilsner Urkel, Kozel dark, 그리고 아일랜드 Guinness draft, 아님 최근 내 입맛을 사로잡은 벨기에 Leffe Bruin 이다.
저자는 사학을 전공하고 언론사 기자를 하다 1996년부터 3년간 가족과 함께 독일 뮌헨대학에 머무르게 된다. 아내와 대학도서관서 나란히 앉아 공부하다 해가 기울면 유치원에서 딸을 찾아 슈바빙 거리의 비어가르텐(Bier Garten)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저자의 가장 큰 기쁨이라 한다.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저자에게 늦깎이 유학생활에 활력과 기쁨을 주는 음료 이상이었다. 난방이 제대로 안되는 아파트, 섭씨 영하 26도의 혹한에서 역부족인 전기장판을 대신하여 추운 겨울밤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보약이 바로 맥주라 한다. 그러다 자주 찾던 슈바빙의 오래된 맥주줏집에서 하인리히 뵐과 토마스 만의 자취를 보고 중세 맥주 양조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수도원을 순계하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여름휴가는 의례히 유럽 맥주를 찾아 아일랜드 더블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체코 플젠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역사에 녹아 있는 서민들의 맥주 이야기도 접하고 술맛 외에도 역사 대한 입맛도 만족시켜줄 책이 탄생한다. 그게 바로 이 책 <유럽 맥주 여행:맥주에 취한 세계사> 이다. 물론 저자는 독일과 유럽 맥주순례를 다녀와서 국내 최초 하우스맥줏집 '옥토버페스트'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6천년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마시는 빵'으로서의 맥주, 와인의 로마와 맥주의 켈트와 게르만족, 서민과 수도원 맥주, 한자동맹, 30년 전쟁(신구교 전쟁), 마르틴 루터의 아인베트(Einbeck)와 지금의 복비어(Bockbier), 바이에른 뮌헨의 맥주순수령, 브뤼헐(Brueghel)과 브라우어(Brauwer)로 대표되는 맥주와 서민들의 삶을 그린 화가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재미 있다.
이어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9월 셋째 주 토요일 ~ 10월 첫째 주 일요일), 영국의 펍과 독일의 비어 가르텐, 동인도회사와 IPA, 체코의 상징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그리고 아일랜드 문학과 기네스(Guinness)를 거쳐 유럽과 중국의 대표맥주 순례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여정은 맥주를 사랑한 사람들에서 종점에 다다른다. 비어 가르텐과 히틀러, 셰익스피어, 마르틴 루터, 슈베르트, 베토벤, 아인슈타인, 그리고 비운의 아일랜드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 까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유럽 맥주 기행에 앞서 우선 국내 수제맥주양주장과 펍(craft beer brewery & tap house) 순례부터 시작해야 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우선 Goose Island Brew House 부터 다시 시작하여 Caligari Brewing, Mysterlee Brewing, Kabrew, Kramerlee 를 지나가고 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거의 30년 전의 객기 같은 청춘을 떠올리며 즐겁게 벗들과 여정을 함께 하리라.
그리고 2년 전 잠시 공부하던 수제맥주 양조를 다시 시작해 본다. 그 첫 병입작업을 한 두 에일 맥주가 바로 Irish Red Ale과 American Amber Ale 이다. 1주 숙성을 하고 마시니 아직 약간 탄산이 부족하다. 한 주 정도 더 지난 후 다시 시음 도전이다.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괴테)
"맥주를 많이 마시면 잠을 잘 자게 되고, 잠을 자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죄 짓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 (마르틴 루터)
"세상은 도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맥주다." (헨리 밀러)
"맥주와 성경, 그리고 7대 죄악이 영국을 이 꼴로 만들었다."(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에일을 사랑했던 셰익스피어. 그래서 그의 희곡 작품들에서도 맥주는 단골 소재였으니...
“I would give all my fame for a pot of ale and safety” (Act III, Scene 2, Henry V) 마음 편히 에일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명예를 전부 내버려도 아깝지 않다 .
“For a quart of ale is a dish for a king” (Act IV, Scene 2, Winter’s Tale) 에일 맥주 1쿼터는 왕을 위한 음식이다.
“Alexander returneth into dust; the dust is earth; of earth we make loam; and why of that loam (whereto he was converted) might they not stop a beer barrel?” (Act V, Scene 1, Hamlet) 알렉산더 대왕은 먼지로 돌아갔다. 먼지는 흙이고, 흙으로 우선 반죽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가 변해서 된 흙 반죽으로 마개를 빚어 맥주통 주둥이들 막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