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나라에 과연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김산(장지락)의 <아리랑>을 읽고 좌익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이런 궁금증이 다시금 들었다. 이른바 '태극기부대'나 지금의 '제1야당'은 엄밀히 말하면 '극우'에 가까운 부류라 본다면, '보수', '우익'은 그럼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이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어느정도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승만계열의 이른바 친미 독립운동가 그룹,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 계열의 좌익 혁명주의자 독립운동가 그룹, 그리고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 같은 친일파 그룹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상식 차원에서의 지식이 있었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어도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대사의 흐름속에서 '학병세대와 우익'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방후 남과 북이 각자 미국과 소련의 지원하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면서 이른바 '서북지역'의 지식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건국과 6.25, 4.19, 그리고 박정희의 5.16과 유신독재의 역사적 격변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 준다.
일본육사와 남로당 출신 박정희를 늘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던 학병 독립운동 지식인 출신 장준하가 1953년 창간하여 1970년까지 당대의 지식인 사회를 이끌던 월간잡지 <사상계>.
언론인에서 군입대, 그리고 다시 언론인으로 변신하면서 반공 국가주의와 서북 지역주의를 오가며 현재 조선일보의 근간을 만든 전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 같은 서북 출신으로 조선일보 후배인 진보지식인 리영희와 얽힌 유신시절 필화 에피소드를 보면, 그에겐 서북지역주의가 때론 반공이데올로기보다 더 우선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서북지역 월남지식인과 함께 비중있게 다룬 부분이 또한 그 지역을 중심으로 강하게 전파된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이들이다.
우선 무교회주의 기독교의 선구자인 김교신과 그이 제자들이 있다. 물론 김교신과 동인지 <성서조선>을 창간한 함석헌도 빼놓을 수 없다. 씨알 함석헌은 우리에겐 <뜻으로 본 한국역사> 란 책으로 알려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이 동인지에 연재한다. 지금까지도 진보적 학풍을 견지하고 있는 한신대와 민주주의와 생협운동을 지키려 한 천주교의 김수환추기경과 지학순주교도 다루고 있다.
그 밖에 언론인 천관우, 시인 조지훈과 김수영 등을 읽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좁은 의미의 '우익', 이른바 보수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좁아져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태극기'를 오염시키고 있는 '수구 극우집단'을 제외하고, 48년 정부수립 후, 70년 기간동안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기, 반공 이데올로기가 상존하고 있는 이 나라를 사실상 이끌었던 리더들은 어쩌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이들과 같은 넓은 의미의 '보수 우익' 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리고 아쉽지만 그 이면에는 '진보 좌익' 진영의 긴 암흑의 시기가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리영희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한길사)의 머리말 을 인용해 본다.
20년 전에 첫 평론집의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 날조, 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으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하였다.
광적인 반공, 냉전, 전쟁애호, 반평화통일 세력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
'진실'은 균형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인식능력과 지식, 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 균형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2018.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