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철학
119쪽 분량의 이 작은 책은 1993년도 정달용교수의 "대구 카톨릭대학 신학 강좌"를 한국 중세철학연구소에서 엮은 것입니다.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례
1. 서론 - "그리스도교 철학"
1) "철학" 이란?
2) "그리스도교적" 이란?
2. 희랍 철학
1) 플라톤
2) 아리스토텔레스
3) 플로티노스
3. 중세 철학
1) 아우구스티누스
2) 토마스 아퀴나스
3) 마이스터 엑하르트
4. 결론
"철학한다는 것(Philosophieren)"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이 책은 시작됩니다.
철학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Denken)"이며 "본다는 것(Sehen)"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Horen)"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화" 입니다.
"참된 철학, 그것은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 철학(Philosophia Christiana)"
희랍 시대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에 하나의 "틀(구조)"을 마련해 주었다 합니다. 고전의 틀 속에 새로운 사상을 담는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중세유럽의 종교적 보수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혁명도 다시 정체되면 또하나의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으로 탈바꿈 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죠. 결국 그것을 담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 입니다.
(소크라테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자기를 내세우고 있는 그 사람들은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24쪽)
플라톤의 이데아(원형) vs.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존재와 신)
플라톤은 '현실의 세계'와 '그것 자체의 세계'로 나누는 데, 후자가 바로 '이데아(idea)의 세계' 입니다. 그의 이데아론은 마치 다중우주(평행우주)론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최고의 선이고 행복은 '진리를 명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의 희랍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플로티노스의 “내려옴”과 “올라감”의 철학을 그의 사상 속에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유대-그리스도교의 계시 진리를 고대 희랍 철학의 “틀” 속에서 표현해낸다. 그리하 “신”, “창조” 그리고 ˝구원˝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해내기에 이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작업,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철학˝ 을 생겨나게 했다."
중세 철학의 비교: 아우구스티누스 vs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의 사상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비교해 본다면, 후자는 ˝올라감˝을 강조한 나머지 사물의 세계를 경시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에 반하여, 전자는 사물의 세계, 현실의 세계를 중시하여 그러한 세계에로 ˝다가가서˝,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신에게로 나아가려 한다. 그리하여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과업이 강조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현실 중시 사상이 왠지 내겐 더 와닿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대 실존주의 철학과도 그 결을 같이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 하늘의 신께 다가가는 것과 이 땅의 우리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중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교 철학과 더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우리를 향하여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라” 고 외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아는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처신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러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신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쉽지 않은 과정의 결과물이겠죠. 우린 죽을때 까지 그 과정속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보수적인 종교관에서 볼때는 상당히 혁명적인 발상의 책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실존적인 사고 자체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전환하는 시각일 수 있는데, 그 지점 끝에는 위버멘쉬(Übermensch; Superman)를 지향했던 니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