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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Vice) vs.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libros 2019. 4. 20. 22:40

영화 <바이스(Vice)> - 아담 맥케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 조지 레이코프

최근 영화 <바이스(Vice>를 보았다. 최근 오스카(아카데미)시상식 각본상(아담 맥케이), 남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랐던 영화에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체제의 미국정치라는 소재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빅쇼트>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를 재조명했던 아담 맥케이 감독이 두 주연배우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과 다시 의기투합해 미국 보수주의 정치가들의 전략 속으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닉슨의 워터게이트와 무기력했던 포드, 신자유주의자 레이건과 부시, 그리고 그 아들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약 30여년의 백악관과 공화당 보수정권의 변천사를 엿보면서 그들의 정치 프레임에 주목하게 된다. 911테러 당시 급박했던 백악관 상황과 그 중심에 있었던 딕 체니 부통령 - 영어로 부통령을 Vice President라 하며, Vice는 동시에 악(惡)이란 뜻도 있음 - 의 시각에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를 위해 체중을 20kg나 찌우고 머리를 밀 정도로 딕 체니 역할에 몰입했던 크리스찬 베일, 잭 나이프를 흔들며 방해되면 상대방을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 딕 체니가 정치 입문시기 처음 그의 보좌관으로 시작 -을 연기한 스티브 카렐, 그리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그대로 재현한 샘 록웰까지 다채로운 연기의 향연을 보노라면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장면을 꼽으라면 딕 체니와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가 침실에서 나누는 셰익익스피어 연극 대사와 같은 대화 장면과 딕 체니가 도널드 럼즈펠드와 백악관 참모진들과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주문하듯 고문과 개인정보법에 대해 아무런 꺼리낌 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역시 아담 맥케이 감독만의 위트있고 독특한 연출법이라 할 밖에.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사임한 이래 보수주의자들은 직접적인 정치 행위 외 록펠러나 쿠어스 같은 재벌들이 헤리티지 연구재단 같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보수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이론과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폭스 TV 등 우호적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는 전략을 강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란 말에 석유재벌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보수주의 공화당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석유 등 화석연료를 마구 써대는 미국의 입장에서 불리한 면이 있어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퍼뜨린다. '상속세' 대신 '죽음세(Death Tax)'를 강조한 것도 민주당의 공공복지 정책을 위한 세수증대계획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다. 

 

여기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언어와 은유를 통한 '프레임의 문제'가 오버랩 된다.

인지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저자(조지 레이코프)는 뇌에서 일어나는 프레임 짜기가 정치 성향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며, 프레임 구성에서의 언어의 중요성(각 진영의 가치관에 적합한 언어를 선택), 그리고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결국 사회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이익에 기초하여 사고한다‘는 계몽주의적 사고는 선거에서 과연 통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진보든 보수든 진영의 성공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보수진영은 건강보험, 교육, 빈곤(보편적복지), 소수자 권리(인종, 성, 성적 지향) 등의 쟁점에 관해 각각의 언어적 프레임을 만들어 여론을 그들에게 이롭게 한다.

예를 들어 <바이스> 영화에도 나왔지만, '저렴한 건강보험법(Affordable Care Act)'을 '오바마케어(Obamacare)'로 말바꾸기를 하여 국민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든가, 교육에서 공적 자원을 도덕적 쟁점으로 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차터스쿨(Charter school)'나 종교계 또는 사립학교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결국 공교육 지원예산의 감소를 가져오는 등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려는 큰 정부 보다 개인의 자유 - 엄밀히 말하면 자본의 자유라 할 수 있다 -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작은 정부, 사적 영역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는 정부를 내세우고 싶어 한다. 

서로 다른 도덕 가치를 서로 다른 쟁점에 적용하는 '이중개념주의(Double conceptualism)'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하지만 상호억제를 통해 뇌 안에 공존한다고 본다. 그렇게 때문에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쟁점에 따라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으며, 이를 보수진영은 더욱 더 교묘하게 부추기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한당을 나와 이른바 '개혁보수'란 캐치프레이즈로 바른당을 만들었던 유승민의 경우 한때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란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왜 폐지를 주우며 근근이 살아가는 빈곤층 노인들 조차도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고 기득권의 권리만을 지키려 하는 보수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일까하는 수수께끼가 여기서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의 가장 기본적인 통찰은 부(富)의 역사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부가 존재하는 데 '생산에 의한 부(Productive Wealth)'와 '재투자에 의한 부(Reinvestment Wealth; 이하 R)'가 그것이며, 여기서 '생산에 의한 부'를 GDP(국내총생산)으로 볼때 R과 G의 비율을 살펴본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1913년까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재투자에 의한 부(R)가 G(생산에 의한 부) 보다 컸다는 것이다. 이후 1차 세계대전, 대공황,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R로 인한 부가 많이 파괴되며 재투자를 위해 잠시 G가 R 보다 커진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시대 부자 감세와 노조 탄압, 기업규제 철폐 등 조치가 내려지고 대처의 영국도 마찬가지 노선을 가면서 다시 R이 G보다 커지게 된다. 피케티의 대안은 '재산세(부유세)'를 통한 부의 재분재 이다. 

보수는 기업도 국가도 의인화 한다. 사람이 누리는 권리 -예를 들어 자유-를 기업도 누릴 자격이 있으며, 한 국가를 악당으로 만들어 벌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도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가는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이스>에도 나오지만 2001년 911테러와 2003년 이라크 - 사담 후세인 축출 - 침공 역시 이러한 '은유'의 결과다.

 

현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이 과거 보수정권하 '기업우호 성장'과 '낙수효과'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의 길'로 나아가는 마중물과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진보 - 내가 보기엔 지금의 여당도 보수에 더 가깝지만 워낙 1야당이 극우성향이라 - 여당과 정부는 그들만의 '프레임'을 잘 만들고 이것을 적절한 언어적 선택과 프레임화를 통해 명확히 대중들에게 각인되도록 꾸준히 전파 시켜야 한다. 

예전과 같이 '수출드라이브 글로벌의존'과 '토건활성화' 정책만으로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는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적극적 추경편성과 공공부문 재투자를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과 결부지어 부정적이미지 프레임이 덧씌어진 '최저임금 인상' 건도 이를 통한 '소득주도 성장'과 '내수경기 진작'의 실효성 있는 지표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IMF의 '추경편성' 권고 등을 인용하는 것도 중요한 '프레임'의 하나로 사용해도 좋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공직선거법개정안, 공수처설치법안, 그리고 검경수사권조정안에 대한 신속처리(패스트트랙)도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라 해서, 고위공직자라 해서, 검찰이라 해서 무소불위의 특권만 누리는 그런 집단을 시민은 원하지 않는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남북한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 이해당사자 국가들, 그리고 전세계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것을 국내외에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내야 할 것이다. 이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자는 '비핵화와 인적물적교류를 통한 남북화해평화'무드에 기어코 찬물을 끼엊고 싶어하는 '반민족반국가주의자'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 평화에도 유해하니 '인류의 적',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보수가 만든 프레임과 어휘선택, 그리고 대중선동에 일일히 대응하거나 일희일비 할 필요 없다. 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자신있게 앞으로 치고나가면 된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