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世說, 두 번째 <밥벌이의 지겨움>
<라면을 끓이며>, <공터에서>, <자전거여행1, 2>에 이어 김훈의 네 번째 책 이다.
그러나 발행일로 보면 2003년 초판이 나왔으니 이 책이 가장 빠르다. 생각해 보니 김훈의 책을 최근에야 읽기 시작하다 보니 근자에 나온 책 중에서 먼저 손이 가게 된듯 하다.
'라면을 끓이며'(2015)는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 등 에서 작가가 뽑고, 이후 새로 쓴 글들을 함께 엮어 펴낸 것이다.
가장 최근작 중 하나인 '공터에서'(2017)는 해방과 한국전쟁의 현대사와 그의 가족사를 씨줄과 날줄처럼, 팩션처럼 쓴 소설인데, 4년전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로 이 작품의 소재에 자연스레 끌리게 되서 읽게된 것이다.
그리고 작년에 새로 하이브리드급 자전거를 하나 사서 종종 타다 보니 그가 2004년에 쓴 '자전거여행'도 뒤늦게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관심과 처지에 따라 독서의 취향도 그때그때 영향을 받는가 보다.
'한평생 연필로만 글을 쓰다보니, 잡지사 편집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산다. 아무래도 컴퓨터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컴퓨터를 배우려고 한 번도 노력해 본 적이 없다. 그 물건의 편리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 누르면 나오는 물건을 볼 때마다 왠지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컴퓨터 배우기를 포기해 버렸다. 팔자에 없는 짓은 원래 하지 않는 게 좋다.' (15쪽.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
난 지금도 노트북을 펴고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김훈작가는 평생 연필로 글을 쓰며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을 통해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해 한다. 그의 글쓰기는 '아날로그적 글쓰기'다.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어떤 글쓰기인가? 랩탑 키보드를 양 손으로 열심히 두드리지만 과연 작가처럼 원고지 몇 장 연필로 쓰고 나면 손이 새까맣게되는 아날로그적 글쓰기의 발치라도 갈 수 있을까?
'길은 생로병사의 모습을 닮아 있다. 진행 중인 한 시점이 모든 과정에 닿아 있다. 태어남 안에 이미 죽음과 병듦이 포함되어 있다. 길은 이곳과 저곳을 잇는 통로일뿐 아니라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모든 구부러짐과 풍경을 거느린다.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65쪽.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
'사람이 길을 버리니, 길이 또한 사람을 버리는 것이어서, 엣 길을 이제 적막하고, 새 길은 또 옛 길이 되어 간다.' (68쪽.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
처가가 문경이라 자주 지나던 문경새재는 저자의 표현처럼 소맥산맥의 모습을 닮아 있지만, 이화령 터널이 그 산밑으로 뚫려 이젠 그 산맥 고갯마루 길을 굽이 굽이 힘들게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편리함 속에 옛길의 정취와 풍광을 여유롭게 즐길 일도 사라졌다. 터널은 그 입구와 출구만 있을 뿐 아날로그적 과정은 모두 사라져 간다고 작가는 안타까와 한다.
이 거룩한 축구공은 아시아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수탈노동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축구공은 오각형의 가죽조각을 손으로 꿰매서 만든다. 아디다스 등 스포츠용품업계의 초국적기업들은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같은 아시아 저임금지대를 옮겨가며 생산공장을 차리고 값싼 어린이 노동을 고용했다. (228쪽. 어린이 노동과 월드컵)
2002년 이 땅에서의 월드컵 열기와 그 추억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화려한 이면에 저임금 아동노동 착취의 그늘을 본다. 내가 하고 있는 공정무역(Fair Trade)은 이러한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한 산업과 자본주의의 폐해를 딛고 정당한 댓가와 공정한 교역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자 애쓰고 있다. 한 개에 100원, 200원 받고 축구공을 꿰매다 눈까지 먼 열다섯 살 인도 소녀의 비극이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작은 손으로 공을 꿰매지 말고 학교에서 그 손으로 연필을 잡고 공부할 수 있으며, 또 축구공을 발로 차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