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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 - 인과 연

libros 2018. 8. 26. 22:25

벗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관심 분야에 대해 주제토론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하여 9월부터 격주 주말에 화상채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처음엔 철학에 관심있는 미국 사는 친구의 의견에 호응해서 가볍게 이야기 하다 결국은 일이 좀 커진듯 하다. 내가 두번째 미팅 토론주제(니체의 삶과 철학)를 맡게 된 것도 그렇고. 

첫 토론주제는 플로리다에 사는 대학교수인 친구가 영화 '신과 함께'를 소재로 관련 주제의 발제를 하기로 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염라대왕, 성주신 등으로 나타나는 토속신앙(샤머니즘, 토테미즘)이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끼친 영향은? 

2) 신과 함께의 1편 (죄와 벌), 2편 (인과 연)은 Karma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미소년註: 단순한 인과응보 - 因果應報 - 보다는 좀 넓게 해석)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Karma의 존재를 믿는가? 당신의 종교나 윤리관에 Karma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3) 영화 '신과 함께'는 서양의 나라들에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서양문명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기반으로 한)과 동양문명 (불교와 유교를 기반으로 한) 사이의 충돌 (헌팅턴?)에서 21세기는 동양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리라고 예상하는가? 한 예로Pax Sinica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가? 


작년 여름 삼각지인가 숙대역입구쪽 만두 맛집에서 아이들과 만두를 맛있게 먹고 명동에 있는 극장서 본 영화가 김용화감독의 '신과 함께 - 죄와 벌' 편이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영화이고 총 3부작으로 제작된다 들었던 바, 금번 토론 주제도 2편을 보아야 할 듯 해서 다시 가족에게 얘길 했더니 나만 빼고 다 보았다고 한다. 별수 없이 나홀로 주말 조조 상영 표를 예매하여 오늘 보고 왔다. 



영화에서 마동석이 분한 성주신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택신의 하나인데,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家神) 가운데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성주단지 모시듯 하다'란 말이 있을 정도록 예전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우리집에도 역시 없으니... 신(神)을 불러들이는 무당(巫堂), 곧 샤먼(shaman)을 중심으로 한 신앙체계가 샤머니즘(Shamanism)인데,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그 본연의 뜻이 많이 왜곡되어 비춰지는 것이 아쉽게 되었다. 성주신 역시 이 토속신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에선 그 성주신이 기존의 주인공 세 차사와 함께 극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 기저를 흐르는 것은 한 단어로 업(業)이라고 볼 수 있다. (業)은 산스크리트어 낱말 카르마(कर्म Karma)의 번역어이다.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속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세 차사 사이에도 '죄와 벌', '인과 연'의 관계를 이 업(業)이란 개념으로 풀어보면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쉽게 될 수 있겠다. 


난 내세(환속)를 믿고 기복적인 성격이 강한 토속신앙 보다는 현세에 충실한 명리학(命理學)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 조금 공부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명리학이란 단순히 점을 보고 길흉화복을 이야기하는 그런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명(命; 태어나면서 받은 질료의 총합)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명리학은 온전히 삶에 국한된 학문이며 삶 이전, 죽음과 죽음 이후는 설명할 수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명리학은 기독교의 천국과 플라톤의 이데아(이성) 세계가 아닌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위의 현세(현실)에서 힘에의 의지와 자기 극복을 통해 '위버멘쉬(초인)'로 나아가려 했던 니체의 일원론적인 세계관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과연 1편과 2편을 통해 한국에서 총 26백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란 영화가 미국 같은 서구세계에서도 흥행할 수 있을까? 종교와 문화의 뿌리가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는 동서양의 차이가 여전하다고 전제한다면 넷플릭스나 일반 극장 스크린을 얼마나 동원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친숙하지만 그들에겐 낯선 동양의 소재와 주제의식이 통할지는 미지수이다. 

1996년 나온 사무엘 헌팅턴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은 냉전이데올로기의 종식후, 그 양상을 다만 문명이라는 표현으로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미국인인 저자가 다분히 서구문명의 시선에서 바라 본 것으로 한국이 중화권으로 편제되어 있고, 일본이 독자 문명이며, 정교회(러시아)와 이슬람 등 종교의 권역으로 일반화 해버린 것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이와 같은 시선이 그들의 보편적인 정서라면 일부 한류 열풍이 있다고 해도 우선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든 소재로서는 '신과 함께'의 글로벌 흥행은 요원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 친숙한 공룡 - 마치 쥬라기 공원, 주라기 월드를 연상케 한다. -을 끌어들인 것은 그들의 입맛도 고려했다는 애교로 볼 수도 있다. 갈길이 먼듯 하나, 문명의 충돌대신 공존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튼 <신과 함께> 완결판인 3편과 4편도 또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