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OCIDE(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장편소설 <제노사이드(GENOCIDE)>.
일본, 미국, 그리고 내전의 한 복판 아프리카 콩고를 넘나드는 스케일이 우선 눈을 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든 첫번째 생각은 영화로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 였다. 물론 벌써 헐리웃에서 판권을 샀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번즈(미국 대통령)가 일일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은 뜻밖의 보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리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사태는 1977년에 슈나이더 연구소가 제출한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이미 경고되었다.
이어 배경은 이라크 바그다드.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자폭 테러가 일상이 된 곳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란 표면적 명분 이면의 석유자원에 대한 탐욕을 채우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업의 요인을 보호하는 용병이 등장하는데, 그 중 주요 등장인물이 될 예거(미 육군 특수 부대 '그린베레' 출신)도 있다.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그의 처지는 이라크의 가혹한 현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데, 마침 (백악관 주도하는 암살작전) 비밀 임무 제안을 받게 된다.
여기서 다시 공간은 일본 토쿄로 이동된다. 생물학자인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불편했던 부자관계를 회상하던 겐토(제약 화학 연구실 대학원생)에게 아버지의 친구라는 기자가 나타나 아버지가 생전에 조사해 달라며 <하이즈먼 리포트>를 언급한다. 그리고 고인이 된 아버지 이름으로 이메일이 한 통 온다.
'아이스바로 더러워진 책을 펴라.'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비밀임무 기지로 모여든 예거를 비롯한 4명의 용병들. 이제 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일본, 미국, 아프리카 세 곳을 배경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에피소드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펼쳐진다.
콩고 열대 우림의 피그미족에서 탄생한 신인류란 설정과 어린 나이에도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이는 아이도 놀랍지만, 더 놀랍고 아니 더 강렬하게 남는 장면은 소년병들이 4명의 용병들과 인류학자, 그리고 신인류 아이 일행을 향해 총을 쏘며 돌진하는 것이었다. 용병들이 위협사격을 해도 뒤에서 소년병들을 총알받이로 쓰는 반군들 때문에 돌아설 수도 없는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평화롭게 살던 마을에서 반군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소년병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이 과연 이러한 현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하는 암울한 제노사이드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겐토의 대학원 동료로 나오는 이정훈은 한국 유학생이다. 전공분야 뿐만아니라 컴퓨터에도 능통하고 뛰어난 지적능력에다 모터사이클을 즐겨 타는 다재다능한 인물이 한국인이란 설정이 흥미롭다. 그리고 관동대지진때의 조선인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반성하고 한국의 '정' 문화를 아는 작가의 시선이 또한 반가운 소설이다.
700쪽 가까운 분량이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에피소드와 세 공간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활약에 한 여름밤 휴가지에서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좋은 SF스릴러 책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원작인 웰 메이드 영화가 나오면 꼭 보고 싶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이다." (p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