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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libros 2018. 2. 14. 23:21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 화제가 되었던 1992년 그 해 여름.

난 대학 4학년 1학기를 휴학한 뒤, 모처럼 내게도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틈틈이 과외가 아닌 일용직 아르바이트도 해서 용돈벌이도 하고, 2종보통 - 당시는 수동(스틱) 면허만 있었다 - 운전면허증도 딴 후 딱 3주 뒤, 만 23살 생일을 지낸 3일 후, 어느 초복 무렵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곳이 좀 특수한 부대라 일과후엔 2인 1실의 기숙사와 같은 숙소에서 개인 별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당시 보기 드물게 주5일 근무라는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여가시간에는 평소 좋아하는 영화를 부대내 극장에서 원없이 볼 수 있었고, 전공의 부담없이 책도 이것 저것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책 하나가 김현 선생님의 <행복한 책읽기> 이다. 

1990년 만 4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신 후 2년뒤 유고로 나온 책인데, 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 일기형식으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당시 문학비평 계간지의 양대 산맥으로 창비(창작과비평사)와 문지(문학과지성사)가 있었고 내 기억으론 선생님은 문학과지성사를 중심으로 이미 평론가로서 입지를 다지신 분 이셨다. 

내 성향은 창비보단 문지가 왠지 더 순수문학 중심의 경향이 있는 듯 하여 더 선호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삶과 문학에 대해 더 천착하시고자 했던 선생님의 마음이 당시 혈기 왕성하나 미래가 불투명했던 23살 청년에게 온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영면하신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다니 인생무상이다. 

선생님의 다음 글로 또 다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보자. 


1989.6.6

어제 저녁에는 기형도의 누이와 그의 선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과음이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도 빚을 갚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은 편하다. 새로 안 사실들: (중략) 중앙고등학교 출신. 공부는 잘한 편. 누이와의 사이가 좋았던 모양. 시를 쓰면, 밤 열두시에도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그것을 읽어준 모양. 정리벽이 있다. 하나도 안 버리고, 모든 것을 보관하고 정리한다. 과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시는 비교적 사실에 충실하다. 석유 냄새나는 누이는 신문 배달을 하는 누이라는 뜻이다. 신문에서 나는 석유 냄새. 다시 말해 잉크 냄새. 대중가요을 위한 기사가 두 편 있다. 심수봉에게 갔던 기사인 모양이다. 유행가를 잘 부른 모양. 우리들 앞에서는 명곡들만 불렀는데 친구들과는 그렇지 않았다. (중략) "죽기 일주일 전에 몸살을 앓았는데 그것이 신호였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어떻든 한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 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1989.12.12 (그의 마지막 일기)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 있다.


내가 그가 다녔던 대학을 갓 입학하던 1989년 3월, 기형도시인은 29살 젊은 나이에 심야의 어느 영화관 객석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다. 

갑작스럽게 짧은 삶을 마감했던 기형도시인에 대한,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선생님의 단상이 글에서 엿보인다. 그런데 선생님은 3년뒤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신 것일까? 

나 역시 시인이 돌아가시고 그의 존재를 그리고 그의 생각들의 편린을 그가 남긴 두 권의 책에서 오롯히 느낄 수 있다.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과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에서.


김현선생님의 <행복한 책읽기>는 1989년 12월 12일의 글에서 끝난다. 

나는 같은 해 3월 재수끝에 대학에 새내기로 입학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도서관에서 도서대출카드 채워가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고, 가끔 소개팅과 미팅도 하고, 교문앞 불심검문하는 전경과 백골단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았고, 경제활동(과외)하느라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죽음'이란 내겐 남의 일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아주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3년의 다사다난했던 대학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있던 그 시절 기형도시인을 만나고 김현선생님의 이 유고집을 접했던 것이 내 인생의 두 번째 변곡점이 되었던 것 같다. 김현선생님 12월 12일 일기의 마지막 대목, 악몽에서 막 깨어나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아, 살아 있다."고  안도하지만, 그의 심상에선 어느 새 '죽음'은 저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를 서성이다 언젠가는 운명처럼 내게도 찾아올 것이라 느끼게 된다. 


2017. 11. 2